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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 김수연 <구의 증명>
작성자 김수연 등록일 22.07.05 조회수 29

<구의 증명> - 최진영 / 은행나무 저, 180

2103 김수연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담의 사랑은 구를 먹는 것이다. 구는 부모로부터 무수한 빚을 물려받았고, 구는 그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도를 찿아야 했다. 때문에 구는 사채업자 일을 대신하고 호스트바에서 몸을 팔았지만, 그마저 부족하여 노예로 팔릴 위험에까지 처한다. 그렇게 구는 어느 한 곳에서도 빚에 허덕이다 결국 길바닥에서 죽었다.

그런 구를, 담은 사랑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때문에 늘 구와 함께 있었고, 구가 사라지자 구를 기다리고, 구가 돌아오자 구와 함께 살았다.

위험한 세상 대하듯 나를 대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담은 바랐다. 자신이 구의 안식처가 되길. 그러나 그러기에는 구의 세계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구의 세계는 끊임없이 도망치고 숨어있지 않으면 몸의 소유를 잃었다. 도망치고 숨었음에도 결국 길바닥에서 죽었다. 구의 세계는 구 하나쯤은 죽어도 개의치 않는 세계였다. 구의 세계는 구를 증명할 수 없었다.

때문에 담은 구를 먹었다. 입속을, 콧속을 아주 깨끗이 닦고, 손톱 발톱을 깍고,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었다. 담은 깍인 손톱 발톱 조각을 먹었다. 빠진 머리카락을 먹었다. 입술과 혀로 얼굴을 핥다가 뜯어 먹었다.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 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담의 사랑은 구를 먹는다. 구를 먹어,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 구를 기억하고 증명하는 것이. 담의 사랑법이다. 먹는 행위는, 담의 사랑의 표현이자 담이 구를 기억하고 증명할 방법이다.

담은 생각했다. 자신이 흉악범인지, 사이코인지, 변태성욕자인지, 마귀인지, 야만인인지, 식인종인지. 그 어떤 범위에도 자신이 들어가지 않자, 그렇다면 자신이 사람인가 생각한다. 과거의 사람은 사람을 먹었다. 배가 고프기에. 고프지 않더라도 먹었을 것이다. 그가 위대하여, 존경 받아서, 혹은 탐이 나서, 그를 사랑해서. 그렇다면 그들은 미개한가? 지금의 사람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지금은 미개하지 않은가. 담은 생각한다. 자신이 사람이길 원하는지.

사람을 먹는 행위가, 잔인하며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단지 사람의 고기를 입에 넣지 않는 우리는 잔인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의 가치를 판단하는 우리는 잔인하지 않은가? 사회적 힘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우리는 정상적인가?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의 고기를 삼키는 담을 두고, 현대 사회가 잔인하며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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